등록된 날짜 2018년 11월 19일 (월)

기사

지난 주 목요일, 드디어 2018년 수능이 끝났습니다. 이제 슬슬 졸업 시즌이군요.

이번 글에서는, 여성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10대 시절에 대해 썼던 노래를 몇 가지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Janis Ian - at seventeen(1975)

 


재니스 이안의 싱글 ‘at seventeen’. 1975년 8월 발매


부처도 서른 다섯 살이 되어서야 깨달음을 얻었다는데, 이 노래의 화자인 재니스 이안(Janis Ian)은 겨우 열일곱살 때 진리를 알았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도대체 이안이 어린 나이에 깨달은 ‘진실’이란 어떤 것일까요?
 


재니스 이안Janis Ian(1951 ~ )

 

‘At Seventeen’은, 겨우 14살에 ‘Society's Child’라는 노래로 데뷔해 천재 가수로 이름을 떨쳤던 재니스 이안(1951 ~ )의 1975년 싱글이자, 그녀의 최대 히트곡입니다.

달콤한 보사노바 풍 기타 반주와 우아한 보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1975년 8월에 발매되자마자 그야말로 미국 전체에서 메가 히트를 쳤습니다. 빌보드 1위는 물론이거니와, 1975년 전체 히트 곡 랭킹에서는 19위를 기록하기도 했죠.

차트 성적뿐만 아니라 상복도 있어서, 그 다음 해인 1976년의 그래미에서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앨범’의 후보로 꼽히기도 하고, ‘최고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 부문에서는 올리비아 뉴튼 존이나 헬렌 레디 같은 쟁쟁한 후보자들을 제치고 기어코 상을 거머쥐고야 맙니다.

그리고 사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노래는 이안의 커리어와 70년대를 대표하는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터넷 산악회 카페 같은 곳에서 가끔 올라오는 추억의 7080 팝송 리스트 중에, TOP 30곡 정도는 아니더라도 TOP 100곡 안에는 꼭 있을 정도니까요. 재니스 이안이라는 이름은 모르시는 저희 어머니도 이 노래는 아십니다.

그러나 ‘At Seventeen’의 가사 내용은, 결코 듣기 편한 멜로디나 이안의 눈부신 경력처럼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 즉 학창 시절의 좌절과 우울을 다루는 노래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기 없는 10대가 학교를 다니며 느끼는 박탈감과 소외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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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열일곱 살 때 진실을 알았어요

사랑이란 건 예쁘고 잘나가는

고운 피부로 웃는 고등학교 여자애들만의 특권이란 걸

일찍 결혼해서 주부가 되어 버리는

발렌타인 데이는 날 위한 게 아니었어요

가식적인 어린애들의 금요일 밤은

늘 더 예쁜 애들을 위한 것이었죠

열일곱살에, 난 진실을 알았어요

그리고 나처럼 못생기고

다른 사람들과 말도 잘 못하는 애들은

절망적인 기분으로 집에 홀로 남아서

전화로 가상의 애인을 만들어냈어요

“와서 나랑 춤추자”라고 말하면서

애매하게 야한 말들을 속삭여 주는 그런 연인을

열일곱 시절의 그런 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는데

(...)

한 번도 발렌타인 데이의 기쁨을 알지 못하던

나 같은 아이들에게

그리고 농구 팀을 나눌 때

한 번도 이름을 먼저 불려본 적 없는 아이들에게

아주 예전의 일이었어요

세상은 지금보다 젊고 생생했죠

세상이 내게 공짜로 준 거라곤 꿈이 전부였죠

나 같은 미운 오리 새끼에게는..

 

I learned the truth at seventeen

That love was meant for beauty queens

And high school girls with clear skinned smiles

Who married young and then retired

The valentines I never knew

The Friday night charades of youth

Were spent on one more beautiful

At seventeen I learned the truth...

And those of us with ravaged faces

Lacking in the social graces

Desperately remained at home

Inventing lovers on the phone

Who called to say "come dance with me"

And murmured vague obscenities

It isn't all it seems at seventeen...

 

(...)


 

To those of us who knew the pain

Of valentines that never came

And those whose names were never called

When choosing sides for basketball

It was long ago and far away

The world was younger than today

When dreams were all they gave for free

To ugly duckling girls like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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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인기없는 아이들의 뼈를 때리는 가사입니다.

가사는 타이틀처럼 17살 때의 생각이 아닌, 이안이 12살에서 14살 정도에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실제로 프롬 파티에 간 경험도 없었습니다. 대신 6학년 때 열렸던 학교의 댄스 파티에는 간 적이 있죠. 그리고 그 때 느꼈던 감정에 대해, ‘다 속임수나, 연극 같았다’고 회상한 적이 있습니다.

이 강렬한 노래 중 특별히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서두에서 언급했듯, “난 열일곱 살에 진실을 알았어요 At seventeen I learned the truth” 라는 첫 구절입니다.

 


데뷔탕트(Debutante)들의 모습. 유럽 사교계에 데뷔하는 십대 상류 계층의 소녀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 구절은, 사실 이안의 오리지널이 아닌, 곡을 만들 당시 22살이었던 이안이 자기 집 부엌 식탁에서 보았던 한 신문 기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뉴욕 타임스]지에 실렸던 ‘데뷔탕트(Debutante)’(* 사교계에 데뷔하는 십대 상류 계층 여성을 일컫는 말)에 대한 기사였는데, 도입부의 첫 문장이 바로 “I learned the truth at 18”였던 거죠. 사교계에 등장해서 유명해지는 것만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한 여성에 대해 쓰인 이 기사를 읽고, 그녀는 ‘18’보다는 운율을 맞추는 데 좀 더 적합한 ‘17’로 나이를 바꾸어서 이 유명한 도입부의 가사를 쓰게 됩니다.

다만 이안 본인은 이 노래에 대해, 곡을 완성하는 세 달 동안 지독하게 추하고 적나라한 심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우울한 노래는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가사 마지막 문단에 나타납니다. 바로 “미운 오리 새끼ugly duckling”라는 부분이죠. 미운 오리 새끼는 나중에 백조가 되니까요. 여러 가지 의미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10대 때의 비참한 경험을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 곡이, 후에 가서는 길이 남을 대 히트곡이 되었으니까요. 사실 이 곡이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생각해보면, 백조가 아니라 봉황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희망적인 메시지가 없다고 해도 이 노래는 충분히 명곡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만큼 세상 모든 루저와 아웃사이더들에게 보편적으로 공감을 얻을 만한 가사도 별로 없으니까요. ‘농구 팀을 짤 때 한 번도 이름을 먼저 불려 본 적이 없는’이라는 부분에서는 소름 끼치는 극사실주의가 느껴집니다. 시대를 꿰뚫은 곡이자, 시대를 앞서나간 노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가사를 쓰는 것을 꺼려했을 정도로 사적인 노래가, 온갖 시대와 국가를 아우르며 수많은 사람들을 울렸다는 점도 놀랍습니다. 인기 없는 애들의 스쿨 라이프란 건 어떤 시절이든 어느 나라든, 대체로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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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은 이 곡의 “The valentine that I never knew"라는 구절 때문에, 1977년 발렌타인 데이 때 팬들에게 700개가 넘는 카드를 받았다고 합니다. 정말 훈훈한 에피소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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椎名林檎 - 17(1995? / 2000)

 

“I say it's an honour to be different”

 


시이나 링고의 베스트 B면 싱글 모음집인 <나와 방전私と放電>. 2008년 7월 발매


타이틀에서 눈치챈 분도 많으시겠지만, 바로 위에서 소개한 재니스 이안의 ‘At seventeen’의 영향을 받고 만들어진 노래입니다. 시이나 링고椎名林檎가 실제로 17살 때 썼던 노래죠.

 


데뷔 초 ‘공산당’이라고 적힌 트랜지스터 메가폰을 들고 열창하는 시이나 링고. 이 때는 머리도 길었다.


지금이야 혼자 1차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에서 살아가는 것 같은 시이나 링고지만, 데뷔 초에는 “공산당共産党”이라고 적힌 메가폰을 들고 노래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녀의 애차였던 벤츠 W114. ‘자기 차를 벤다’는 PV의 컨셉을 위해 두 조각을 내 버렸다.

 

또, ‘죄와 벌(罪と罰)’이라는 2000년도 발매 싱글의 PV에서는 ‘히틀러’라는 이름을 붙였던 자기 애차를 두 조각 내기도 하고, PV 모음집 엔딩 컷에서는 이 두쪽 난 차를 숫제 박살내 버리는 연출도 있었지요. ‘NIPPON’을 부르며 욱일기 문양으로 삼라만상을 디자인하는 시이나 링고의 지금 모습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정치 성향만큼 정반대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가사 경향도 상당히 달랐습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난해하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2집까지의 노래들은 대부분 10대 때 겪었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가사들이 많았습니다.

 


데뷔 앨범인 [무죄 모라토리엄]. 1999년 2월 24일 발매

 

특히,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인 십 대 때 썼던 곡들을 중심으로 발표했던 1집 앨범 [무죄 모라토리엄]이 그랬지요. 이 앨범은, 전체가 그녀의 과거 연애담과 사적인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표적으로는 가수 데뷔 때문에 고향을 떠나면서 애인과 이별하는 이야기를 담은 ‘바른 거리’나, 데뷔한 뒤 낸 싱글로 히트를 치자 전화를 걸어 질척거리는 예전 남자친구에게 쏘아붙이는 ‘경고’ 같은 곡이 그렇죠.



시드 비셔스와 그의 연인으로 유명한 낸시 스펑겐

 

본인이 좋아하던 가수들의 이름을 가사 속에 자주 넣고는 하던 것도 그녀의 초기 가사 특징 중 하나입니다. ‘기브스’에서는 코트니 러브와 커트 코베인이 나오고, 첫 히트 싱글인 ‘여기서 키스해줘’에서는 자기 남자친구를 시드 비셔스에 비유하면서 “현대의 시드 비셔스에게 수갑을 채울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노래하기도 합니다. 시드 비셔스는 ‘시드와 백일몽’이라는 곡의 타이틀에서도 등장하죠. 개인적으로 시드 비셔스에게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입장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유지만, 당시의 시이나 링고는 시드 비셔스를 몹시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재니스 이안의 이름도 이 ‘시드와 백일몽’에서 나옵니다. 도입부의 “예전에 꾸었던 꿈에서/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어서/스스로를 재니스 이안이라고 믿고 있었어”라는 구절입니다.

실제로 시이나 링고는 초기 인터뷰에서 영향을 받은 뮤지션을 거론하면서 늘 재니스 이안을 꼽기도 했죠. 지금 소개할 ‘17’도, 그녀가 17살 때 재니스 이안의 ‘at seventeen’을 듣고 “나도 현재의 내 이야기를 쓰자”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곡입니다. 동기가 명쾌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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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17살이야

내 학교는 시골에 있어

반 애들은 운동화를 신고

똑같은 잡지를 읽지

난 지금 17살이야

학교는 점점 따분해지기만 해

교사들은 다들 너무 어려

날 별난 애 취급하기만 하고

 

내가 좋아하는 건 오직 철학 수업, 그리고 학교가 끝난 후의 시간뿐이지

그 때만이 온전히 내 시간이야

학교가 끝나면 괜찮은 여자애들은 괜찮은 남자애들을 만나고

다른 여자애들은 곧장 집으로 가

시시껄렁한 드라마 이야기나 하면서

 

난 혼자 집으로 돌아가

이름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걸 좋아해

지하철을 떠돌고, 어딘가를 여행해

“어디도 아닌 곳을..”

(....)

난 학교에서 비슷비슷한 얼굴들을 봐

걔넨 내가 별나다고 그래

난 그게 명예로운 일이라고 생각해

별나다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너희 같아질 수는 없어

 

now i'm seventeen

my school is getting tiresome

teachers-they're so young

singling me out

only like philosophy & after school the time

that's what i call my own time

nice girls meet nice boys end of school day

while other girls go strait home

talking 'bout soaps'n' that

 

I go home alone

Like it watching the nameless people

Surfing subways, travelling somewhere

"...Nowhere..."

 

(...)

 

i see the same faces in school & they say that i am different

i think it's an honour

i say it's an honour to B diffrent

i can't go their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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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전 시이나 링고의 10대 시절 이력서와 사진

 

시이나 링고는 실제로 17살 때 학교를 중퇴했습니다. 그리고 연예계에 뛰어들어서 가수가 되었죠.

어떤 사람은 이 노래를 시이나 링고의 중2병 곡이라고 하던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사람마다 정의야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중2병이란 건 가진 건 뭣도 없으면서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서 다른 사람들의 기를 차게 하는 그런 병이잖아요. 개인적으로 시이나 링고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이 노래를 듣고 겨우 열일곱살에 만든 노래라는 걸 단번에 알아볼 거라는 생각은 못 하겠습니다.

‘17’에 대해 찾아보면서 본 글 중에 이런 말이 있더군요. “지금도 전국의 얼마나 수많은 여고생들이 시이나 링고의 ‘17’을 들으며 공감하고 있을까?”

맞는 말입니다. 실제로 별난 학생이든, 아니면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든, 일본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많은 열일곱 살들이 품고 있을 생각이 아닐까 합니다. ‘다른 애들은 다 따분하고 평범해 보이지만, 자기는 좀 다르다’는 생각 말이지요.

 

 

시이나 링고는 ‘다르다’라는 것에 대해 아주 민감한 가수입니다. 그녀의 가사 속에는 수많은 ‘다른’ 것들에 대한 은유와 비교와 한탄이 존재합니다.

 

가장 원초적인 남자와 여자, 암컷과 수컷 같은 근본적인 차이에서부터, 연인의 변해버린 마음에 대해 슬퍼하는 가사나, 기녀로 컨셉을 잡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떠돌아다니며 시시각각 달라지는 마음을 우아하게 포장하는 내용도 있지요. 심지어는, 2000년 발표한 2집 [승소 스트립]의 첫 트랙 ‘허언증(虛言症)’의 경우에는, 곡의 기묘한 타이틀에 대해 “이 곡을 쓸 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거짓말 같아서 저런 타이틀을 붙였다”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곡을 쓸 때 당시와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거죠. 물론 앨범을 낸 직후에 했던 라이브에서는 신나게 ‘허언증’을 열창했지만요.


 

어쨌거나 그만큼 시이나 링고에게 있어 ‘다르다’라는 것은 중요한 소재입니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이 노래 역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다고 말하는, 이른바 근본적인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치열하게 모색하는 내용입니다.

시이나 링고가 자의식에 대해 노래하는 곡은 ‘17’ 이외에도 상당히 많습니다. 직접적으로는 2집의 ‘identity’나 3집의 ‘의식’ 같은 노래가 그렇고, 간접적으로는 남녀 관계를 통해 스스로의 무의식을 반영하고 있는 듯한 내용의 ‘욕실’도 그렇죠.

 


시이나 링고의 4집 [싸구려 가십(三文ゴシップ)]. 2009년 6월 24일 발매

 

개인적으로 그런 종류의 가사 중 특히 흥미롭게 생각되는 것은, 그녀가 17세 때 썼던 이 ‘17’과, 31살이었던 2009년에 발표한 [싸구려 가십]의 ‘평범한 사람(凡才肌)’이라는 곡입니다.

‘평범한 사람(凡才肌)’은, 그 제목에서도 짐작가듯, 특별한 사람, 즉 ‘천재’와, ‘평범한 사람’들 간의 차이에 대해 논하는 노래입니다. 다시 말해, ‘17’에서도 다루었던 소재이지요.

다만 ‘평범한 사람’의 주제는 ‘17’처럼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래요, 당신과 내가 다른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는 건 터무니없는 착각/(...)/‘천재들’이라는 말이 사이를 벌리고 있어요/(...)/당신과 나, 둘 중 어느 쪽이 전혀 다른 건지/따져서 밝혀 보고 싶어”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넌더리를 내고 있지요. 똑같은 소재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도, 말 그대로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군요.

 

 

‘17’은 자기 존재 자체를 적극적으로 곡의 소재로 삼는 시이나 링고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특히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제가 아는 한) 그녀가 자기 정체성에 대해 논한 곡 중 가장 이른 시기의 노래라는 것이지요. 어떤 식으로 시이나 링고의 세계나 가사 표현력 등이 ‘달라졌는지’에 관해 알고 싶으신 분에게 의미가 있는 곡일 것 같습니다.

 

또, 초기 링고의 대표적인 음악 특성들을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도 귀중한 곡이지요.

노이즈가 낀 현악 사운드와 세련된 피아노 편곡, 아직 앳된 시이나 링고의 목소리까지, 그녀가 아직 사상적으로 맛이 가기 전 어떤 음악을 했는지 알고 싶으신 분이라면, 이 노래 한 곡만 들어도 대체적으로 감을 잡으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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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ko - 三国駅(2005)
 

“변하지 않는 거리, 저기 보이는 볼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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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ko의 17번째 메이저 싱글인 ‘미쿠니 역(三国駅)’. 2005년 2월 16일 발매


aiko는 일본 여성들, 그 중에서도 특히 2~30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여성 팝 가수입니다. 2018년 현재 시점으로 데뷔한 지 딱 20년이 된 중견 가수인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세련되면서도 무겁지 않은 밴드 사운드와 유니크한 목소리를 무기로,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음원보다 빼어난 라이브 실력이나, 경쾌하고 아름다운 편곡 등, aiko가 인기 있는 이유는 많이 들 수 있겠지만, 특히나 2~30대 여성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 주 요인은 그녀가 쓰는 가사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대체적으로 감성적인 연애 가사가 대부분인데, 순간적인 장면이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표현력이 정말 말도 못하게 예술입니다.

다만 지금 소개할 ‘미쿠니 역(三国駅)’은, 굳이 말하자면 연애 노래는 아닙니다. 센티멘털한 분위기로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그립고 쓸쓸한 심정을 노래한 곡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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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이 어제와 똑같았었는데

나는 뭘 초조해하고 있던 걸까?

변하지 않는 거리

저기 있는 볼링장

조바심 내고 있던 건 나뿐이고

괜히 두려워하기도 하고, 겁을 내기도 하고...

꽉 잡은 손을 놓고 싶지 않아

 

毎日が昨日の様だったのに

なにを焦っていたの?

 

変わらない街並み あそこのボーリング場

焦っていたのは自分で

煮詰まってみたり 怖がってみたり

繋いだ手を離したく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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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름도 야나이 아이코(柳井 愛子)인 aiko는, 1975년생의 오사카 출신 여성 팝 가수입니다. 그녀는 이 곳에서 쭉 자라서, 중학교나 고등학교도 오사카에 있는 시립 학교를 다니는 등, 가수로 데뷔하기 전까지의 대부분의 생활을 고향에서 보냈습니다.

 


aiko가 다녔던 오사카음악대학단기대학부(大阪音楽大学短期大学部). 우리나라로 치면 음악 전문대라고 할 수 있다.

 

대학교도 역시 오사카에 있는 곳으로 진학했습니다. 바로 오사카음악대학단기대학부라는 곳입니다.

단기대학은 우리 나라로 치면 전문대 같은 곳인데, 그녀는 이 학교의 팝 보컬 학과로 진학해 19세 때 ‘제 9회 TEEN'S MUSIC FESTIVAL'이라는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획득하고, 이 일을 계기로 연예계로 진출하게 됩니다.

‘미쿠니 역’이란, 가상 공간이 아니라, 실제로 그녀가 다니던 전문대와 가까운 역인 쇼나이 역(庄内駅)의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역이라고 합니다. 즉 실제 공간을 무대로 한, 그녀의 학생 시절의 추억이 그대로 담겨 있는 곡이지요.

 


개축되기 전의 미쿠니 역. aiko 추억 속의 미쿠니 역은 이런 모습일 것이다.


2005년 이후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공사로 인해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이 곡은 1998년, 즉 스물 세 살의 aiko가 기억하고 있던 미쿠니 역을 배경으로 그려낸 곡이기도 합니다. ‘변하지 않는’이라는 말은, 98년의 시점에서 변하지 않았다는 소리죠. 지금 가 보면 aiko가 노래했던 거리 풍경과는 많이 달라져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가사 속 ‘볼링장’이 그렇죠. 실제 저 구절의 모델이 되는 볼링장은 ‘신 미쿠니 아르고(新三国アルゴ)’라는 장소인데, 2011년에 한 번 문을 닫고 2013년에 다른 간판을 달고 새로운 볼링장으로 열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노래 전체의 무대가 되는 ‘미쿠니 역’도 2005년 이후로 대대적인 개발이 이루어져서, 주위에 맨션이 들어서거나 역 플랫폼이 2층이 되거나 하는 등, 그다지 예전 모습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미쿠니 역’ pv 속 aiko

 

학창 시절의 추억과 그리운 마음을 듬뿍 담은 노래답게, PV에도 aiko가 다니던 중학교나, 그녀가 부회장직을 맡고 있던 학생부실의 낙서, ‘미쿠니 역’에 나오는 볼링장 같은 aiko만의 추억들이 실제로 화면 속에 담겨 있기도 합니다. 저 장소들을 촬영할 때, 감독이 aiko에게는 비밀로 하고 찍어 왔기 때문에, 나중에 완성본을 본 aiko는 깜짝 놀라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후에는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다 같이 모여 PV를 보면서 펑펑 울었다고도 하네요. aiko가 울었다니 제 마음도 아픕니다.

사담이지만, 저도 aiko처럼 한 곳에서 십 년을 넘게 살면서 집과 가까이에 있는 초중고교를 졸업했습니다. 다만 제가 살던 동네는 변하지 않는 풍경은커녕, 눈만 뜨면 어제 멀쩡히 장사하던 스크린 골프장 간판이 떨어져 있는 정신 사나운 개발지역이었던 게 다른 점이었죠.

때문에 “변하지 않는 거리 풍경”같은 가사를 봐도 그다지 공감은 안 가지만, 그래도 이 곡을 노래하는 aiko의 목소리를 들으면 왠지 그립고 슬픈 마음이 듭니다. 즉, 저처럼 변함없는 고향에 대한 달콤씁쓸한 기억 따위 없는 개발지역 거주민이 들어도 감정이 이입될 만큼, aiko의 표현력이 대단하다는 소리이지요.

졸업을 몇 개월 앞둔 지금 시점의 학생 분들이 들으면 더욱 먹먹한 마음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추천하는 노래입니다.

 


김윤아 - girl talk(2004)

“열일곱, 또는 열 셋의 나”

 


‘girl talk’가 수록된 김윤아의 2집 [유리가면]. 2004년 3월 5일 발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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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한 명의 걸출한 뮤지션이 있습니다. 바로 김윤아입니다.

위의 세 명처럼 따로 설명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녀가 2004년에 발표한 솔로 2집 [유리가면]은, 지금까지도 회고되는 걸작입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동명의 영화에서 타이틀을 따 온 노래에서 우아하게 시작점을 끊어서 마치 깊은 강물을 천천히 들여다보듯 흘러가는 45분간의 러닝타임은, 듣는 사람이 그녀의 무의식 속으로 삼켜져 버릴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매혹적인 감각을 선물합니다.

앨범 타이틀처럼, 그녀는 여러 가면을 쓰고 스스로의 여러 체험과 마음에 대해 노래합니다.  우리는 이것이 실제 그녀의 목소리인지, 속마음인지 구분할 수 없습니다. ‘유리가면’이라는 키워드는 앨범 전체를 관통하며, 우리는 그녀의 심정에 공감하기보다는 마치 여러 편의 연극을 한꺼번에 보는 것처럼 그 내용의 밀도와 분위기에 압도당하게 됩니다.

다만 마지막에 와서, 이 명배우는 줄곧 쓰고 있던 자신의 가면을 스스로 벗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르는 노래가 바로 ‘girl talk’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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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또는 열셋의 나

모순 덩어린 그앨 안고

다정히 등을 다독이며

조근조근 말하고 싶어

수많은 사람들과

넌 만나게 될거야

울고 웃고

느끼고

누구도 믿을 수 없었고

세상은 위선에 가득차

너는 아무도 널

찾지 못할 그곳을 향해

달려 달려

도망치려 했지만

아무리 애를 써

벗어나려 해도

너의 힘으론

무리였지

더딘 하루 하루를 지나

스물다섯 서른이 되어도

여전히 답은 알 수 없고

세상은 미쳐 있을테지

그래 넌

사람이 토하는

검은 기운속에

진저리를 치며

영혼을 팔아

몸을 채우며

살아 남진 않으리라

주먹을 꼭 쥐며

다짐하고

또 다짐하겠지

너는 반짝이는 작은 별

아직은 높이 뜨지 않은

생이 네게 열어줄 길은

혼란해도 아름다울거야

수많은 사람들과

넌 만나게 될거야

사랑도 미움도

널 더욱 자라게 할거야

마음안의 분노도 불안도

그저 내버려두면

넘쳐 흘러갈거야

라~ 라~

열일곱 또는 열셋의 나

상처 투성인 그앨 안고

다정히 등을

다독이며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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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는 2집 발매 당시, 이 노래에 대해, “‘girl talk’처럼 열 일곱 또는 열 셋 무렵의 나는 너무 민감한 소녀였다. 음악으로 내 안의 검고 더러운 것을 토해내지 않았다면 이미 난 죽었을지도 모른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녀는 이 노래를 발표하던 2004년, 딱 만으로 서른 살을 앞두던 시점이었죠. 가사 속 “스물 다섯, 서른이 되어도…”에 나오는 서른 살 말이에요. ‘girl talk’는, 바로 그런 때의 김윤아가 ‘민감한 소녀’였던 십대 시절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따뜻한 염세가이자, 조금 냉담한 응원가입니다.

 



메이저 데뷔 전이었던 인디 시절의 김윤아

 

비틀고, 비웃고, 때로는 해학적으로 세상의 모순에 대해 지적하는 김윤아가, 이 곡에서는 모든 가면을 내려놓은 채, 이 세상의 십대들에게 다정하고 진솔한 말투로 삶의 맨얼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삶에 대해 무조건 긍정도 하지 않지요. 일단 나약함을 인정하고 나서, 그런데도 힘을 내라고 말해 주는 ‘팬이야’처럼, “생이 네게 열어줄 길은 혼란해도 아름다울 거야”라는 가사는 인생의 양면에 대해 가감 없이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일과 더 넓은 사회를 앞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곡입니다.  

 


글쓴이: 박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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