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된 날짜 2014년 05월 18일 (일)

기사

제트(Jet)는 객관적으로 정말 끔찍한 밴드다. 인디음악 웹진 피치포크(Pitchfork)의 현자들은 이들의 앨범 “Shine On”에 0.0점을 줬으며, 침팬지가 자기 입에다 오줌을 누고 있는 유투브 동영상으로 앨범 리뷰를 대신했다. 그러므로 제트는 객관적으로 입증된 최악의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실은 그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나는 제트에 대해 이리저리 나불대는 내 쓸모 없는 주둥아리를 닥치는 편이 좋을 듯 하다. 왜냐면 어차피 나는 고작 ‘허세에 쩔은 힙스터 나부랭이’(PHJ : Pretentious hipster jerk)일 뿐이다. 피치포크는 이런 허세에 쩔은 힙스터 나부랭이들이 모여 힙스터들이 만든 밴드에 관해 극히 힙스터스러운 의견들을 휘갈기는 공간이며, 그럼으로써 나와 같은 이런 힙스터 머저리들은 쥐뿔만한 우리들만의 힙스터 세계에서 우월감을 느끼는 것이다.

제트는 수 백만 명의 팬을 거느리고 있으며 음악활동으로 수 백만 달러를 거머줬다. 그들의 성공과 그들을 향한 사람들의 경배는 제트가 사실은 나쁜 밴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엄청난 숫자들을 한번 봐라! 제트는 6,500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았다! 그에 반해 밴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은 고작 2백만 장이 넘는 앨범을 팔았을 뿐이다. 이건 제트가 객관적으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보다 3배 정도는 더 좋은 밴드란 소리가 아니고 뭔가! 명.백.하.게.도. 말이다.

"제트보다 세 배 정도 나쁨."

내가 머저리란 사실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내가 위에서 말한 것들은 다 틀렸다. 왜냐면 제트는 주관적으로 볼 때 좋은 밴드이기도 하고 최악의 밴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도 주관적으로 몹시 훌륭한 밴드이기도 하고 몹시 훌륭함에 아주 아주 살짝 못 미치는 밴드이기도 하다. 왜냐면 미학은 결코 보편적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주관적인 진리다. 자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음악의 질에 관해 논의할 수 있을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지각색의 취향들과 미학적 관점들을 전부 끌어안고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화 도중에 상대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 대해 욕을 한다면 주먹부터 쥐고 달려든다. 뭐 하지만 나는 싸이코패스이거니와 무려 세 개의 대륙에 지명수배가 내린 범죄자이다. 만일 당신이 나와 같은 싸이코패스나 지명수배자가 아니시라면, 그냥 잠자코 계속해서 대화나 이어나가든지 하는 게 좋을 것이다.

당신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인간은 내/외부의 자극을 받는 여러 화학물질들의 조합체란 사실이다. 나는 지금 여기까지 읽은 당신의 마음의 소리가 다 들린다. “뭐 화학물질? 어이, 잠깐 멈춰봐 이 친구야! 이건 예술에 관한 이야기라고! 과학 같은 헛소리는 집어쳐!” 또 다른 것도 있다. “오늘밤 밖으로 나갈까? 아니면 그냥 집에서 공부나 할까?”(끼어들어 미안하지만, 난 당신은 반드시 밖으로 나가 놀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하나.. 음.. 이건 너무 소름 끼치는 병신같은 생각이라 당신의 체면을 위해 여기서 까발리지 않겠다. 뭐, 어쨌든 곧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아프고 병든 두뇌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과.학.은. 중.요.해.!” 만약 우리가 우린 각각 특별한 화학물질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졌으며, 음악이 이 화학물질에 여러가지 방법으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째서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음악에 각자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응하는지에 관한 그림을 그려내는 것이 조금은 더 쉬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유전자 때문인지 아님 내 탄생과 관련된 그 어떤 무엇 때문이든 간에, 기본적으로 내 몸 속의 화학물질들은 당신보다도 일렉트로닉 계열의 앰비언트-드로운 음악(ambient-drone music)에 더욱 잘 반응한다. 이 음악을 듣는 멋진 시간 동안, 내 두뇌는 더욱 많은 엔돌핀과 도파민을 배출하고 나의 기분을 방방 뛰게 만드는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난 보리스(Boris) 같은 밴드의 음악을 들을 때 당신 방으로 냅다 뛰쳐들어가 이렇게 외치는 것이다. “오 마이 갓! 세상에 너 이거 꼭 들어야 해!” 그러고는 헤드폰을 건네 강요하면서 논문을 쓰고 있거나 혹은 그 밖에 다른 덜 중요한 것을 하고 있는 당신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세상에 뭐 이런 멍청이 천치가 다 있나 싶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난 내일 박사논문 심사가 있으니 방해하지 말라고 말한다.(사실은 논문심사가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시험일 뿐이면서.) 이 일로 당신은 내게 엄청 열받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괜찮다. 이것은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일이며 과학으로 다 설명될 수 있다! 그것은 또한 내가 당신이 나를 괴상한 별명으로 부르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만약 날 그렇게 불러도 솔직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이것만은 명심하라. 나는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뿐이며, 또한 당신이 박사논문 심사를 미적거리고 있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

"당신은 이것이 Top 40 radio에 들지 못한다고 생각하나요?

하지만 지나친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가진 말자. 사람은 적응가능한 생물들이고 항상 배울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우리는 이제 솜털이 보송보송 나있는 수상 돌기들에 대해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들이 어떻게해서 더욱 솜털이 일게 되는지나 혹은 뉴런들이 확실한 길을 계속 반복해 통과하는 것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해 하나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그저 나를 믿어주길 바란다. 우리가 배울 수 있다는 이 과학적 이야기는 예전에 내가 어디에선가 읽었던 것이고, 그건 나보다도 훨씬 똑똑한 어떤 사람이 쓴 것이다. 우리는 모두 배울 수 있고 적응할 수 있는 존재다. 우리가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우리의 음악적 취향과 지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음악의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있거나, 실험적 음악을 (남들보다 더) 많이 들어봤다 해서 그에게 객관적 ‘전문성’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은 문제를 겪는 지점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한 음악가가 자신이 직접 만든 악기로 10분마다 하나의 화음을 뽑아내는 그런 낯설고 실험적인 음악을 들으면서 즐거워한다. 왜냐면 우리는 단지 그걸 즐길 수 있게 설정된 두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음악의 질을 판단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하면서 굉장한 동물적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여긴다. 하지만 사실은 음악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객관적 판단 면에서, 우리가 저스틴 비버를 추종하는 광신도 팬들보다 더 나은 점은 하나도 없다.(그렇지만 나는 최소한 그들의 존재가 지니는 본질에 관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권리 정도는 갖고 있으며, 난 저스틴 비버를 로켓에 집어넣고 태양 한가운데로 날려버리는 것에 관한 비용편익분석을 하곤 한다. 왜나면, 진짜 진심으로, 그의 음악은 빌어먹을 최악의 것들이다.)

음악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수학적인 정비례 그래프가 아니다. 복잡한 박자를 지닌 배틀즈(Battles)의 매쓰 락(math rock)이나, 귀청이 터질 듯하게 만드는 오대리의 실험적 음악을 듣고 즐길 줄 안다해서 음악적 이해의 축의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화학물질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은 각종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취향을 발전시킬 것이다. 이런 사실은 조금은 좌절스럽지만 또한 멋진 일이라 할 수 있다. 다양성은 비록 그것이 사람들을 다른 타입의 어려운 음악에 관해 강력한 취향을 갖게 만들지라도 축하 받아야 할 성질의 것이다. 각기 다른 타입의 음악들은 씬이 지닌 창조성에 영감을 주는데, 장르들을 뒤섞게 하고, 교차하게 하고, 다른 하나와 겨루게 하여, 아티스트들의 상상력에 계속해서 활력이 돌게 한다.

나는 서울처럼 재능 넘치는 음악 씬이 있는 곳에 살면서도 어떤 국제적인 밴드가 자신들의 지역에 방문하면 꼭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마냥 환호하면서, 자긴 음악을 정말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를 본다. 나는 이것은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터무니없는 음악적 오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머리 속에서 “나쁜 음악”과 “좋은 음악”을 분류하는데 사용하는 객관적 측정 수단은 밴드의 인기도, 밴드의 국적, 비평가들의 찬사 혹은 그 밴드에 관한 알고 있었던 지식 정도라고 추정된다. 정작 그들 주변의 음악 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면서 이렇게 전문가인 마냥 구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만약 그들이 선입견을 없에고 엄청나게 많은 여러 요인들이 그들의 두뇌에서 그렇게 갈망하는 엔돌핀의 배출을 이끌어낸다는 미학의 주관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난다면, 이제 열린 눈과 신선한 귀로 그들 주변에 존재하는 지역 씬에 대한 탐험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평가들과 음악 시상식들은 어떤가? 그것은 이런 모든 화학물질, 뉴런, 상상력들을 감안해보려는 무리한 개념인 듯 하다. 글쎄.. 그래, 그것은 그렇다. 시상식 쇼들과 한 해의 끝에 발표하는 최고의 탑 10 앨범 목록들은 객관성을 가장한 아주 주관적이고 노골적인 사례들이다. 한국 음악 시상식 투표자들이 지난 한 해 동안 모든 아티스트들이 발매한 모든 싱글 앨범들을 듣고 그 각각의 작품들에 실속있고 유용한 의견을 가질 충분한 시간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목록을 만들 때 똑같이 할 것 같은가? 나는 이런 시상식이나 목록들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단지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이렇게 말해야 옳지 않겠는가. “여기 몇 개의 앨범들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들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고 또 이 밴드들을 홍보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진짜 본질로 내려가보면 사실 이 생각이 전부가 아닌가! 그 음악은 어떤 방향에서 그들의 화학물질을 간지럽혔고, 이제 그들은 자신들에게 일어난 것과 유사한 화학반응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길 바라면서 그 촉매제(음악)를 공유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대체 어째서 어떤 한 앨범이 최고로 좋은 앨범이 되면 나머지는 두 번째로 좋은 앨범이 되어야만 하는가? 음악을 들을 때 그들의 두뇌에서 배출되는 화학물질의 수치를 잴 수 있는 비평적 수단이 없다면, 그들이 나누는 이런 분류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개인적으로 자격 있다고 생각하는 아티스트들을 홍보하려는 욕망에 따른 오직 개인적 취향의 이미지 관리나, 아니면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의 경력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나, 혹은 음악의 질과 관계없는 다른 여타 백만가지 이유들은 전부 그저 음악적인 정치에 다름 아니다.

취향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밴드를 누군가가 싫어한다해서 그것이 당신이 사랑하는 밴드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가지 않는다. 사실, 음악을 싫어하는데 시간을 쏟는 것은 내겐 엄청난 시간 낭비로 보인다. 나는 기분을 좋게 하는 화학물질을 배출하는 내 두뇌의 한 부분을, 모하비 사막에 있는 것보다도 더 말라비틀어버리게 하는 것만 같은, 내가 정말로 좋아하지 않는 밴드들의 공연에도 많이 다녀봤다. 하지만 그곳에서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음악을 정말로 즐기고 있다. ‘나는 달라’, ‘난 이들보다 우월해’, ‘난 이 사람들보다 못하구나’라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사람들과 심리적 거리감을 두거나, 혹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볼 때 우리 두뇌가 하는 경향대로 굴지 말자. 그 대신 그들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만의 음악을 즐긴다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우린 아직 연결돼 있는 부분이 있구나라고 느껴보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을 때 내 몸의 화학물질이 반응하는 것과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그들 역시 화학물질의 반응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것은 일개 허세에 가득 찬 힙스터일 뿐인 내게도, 꽤나 아름다운 생각인 것 같다.

미학적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일종의 거친 분야다. 우리는 계속해서 등급을 나누고, 성문화하고, 우리 삶의 모든 것들에 관해 순서를 매기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런 성향을 똑같이 미학적 선호도에도 적용하여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은 이해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만일 우리가 전적으로 주관적인 사람들의 취향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좋은 음악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개별적으로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를 더욱 고상하거나 교양 있는 사람으로 치장하려는 시도로서 음악을 이용한다면, 우린 예술의 진정한 즐거움을 누릴 기회를 박탈당한다. 음악은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에 우리 스스로를 내맡겨야한다. 나는 당신 몸의 화학물질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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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Alex Ameter
Translation By: 임도연 (Doyeon 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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